Thursday, 25 November 2010
We Are The World
올해 아이티 대지진 이후 다른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던 'We Are The World: 25 for Haiti'의 1985년 원곡입니다.
Michael Jackson과 Lionel Richie가 만들고 마법사 Quincy Jones가 프로듀싱했던 곡에 당대 미국 최고의 가객들이 모였습니다.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곡을 만든 두 사람과 함께 다른 19명의 가수들이 모여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We are the ones who make a brighter day
So let's start giving
이라고 노래하며 아프리카 기아 구제를 호소했습니다.
곡과 가사도 좋지만, 짧은 소절 내에서 각자의 개성과 음악성을 강하게 전달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하니 최고들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룹 Journey 출신의 Steve Perry, 재즈 보컬리스트 Al Jarreau의 팬입니다만, 85년 당시 30~50대의 나이로 한참 활동 중이던 그들 이외에도 John Oates나 Bette Midler, Bob Geldof 같은 뮤지션까지 코러스로 참여했으니 당시로도 그랬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위대한 순간입니다.
이 노래 덕분에 Ray Charles 할아버지가 부른 노래의 마지막 구절처럼 남을 돕는 일이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하는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Saturday, 20 November 2010
순위 매기기의 허점
우리 사회가 선진국을 쫓아 따라 온 덕분(?)인지 선진국에서 평가한 잣대에 크게 휘둘린다. 우리는 외국에서 어떤 분야나 기관, 나라를 평가한 후 순서를 매긴 결과를 가지고 우리끼리 비판과 비난을 일삼고 나서는 다음 번 평가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냥 또 잊어버리곤 하는 일에 아주 익숙한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대학별 순위 매기기다. 전세계 대학을 대여섯가지 항목에 가중치를 두어 평가하는 것에 허점(虛點)이 있음을 지난 주 뉴욕타임스가 기사화했고 우리 신문이 이를 인용해서 보도했다. (외국에서 보도하기 전에 우리 신문은 왜 이런 정도의 기사를 못 쓰나 모르겠다.)
New York Times(11월 14일자) Questionable Science Behind Academic Rankings
조선일보(11월 15일자) NYT, 세계 대학순위 평가, 너무 믿지 마라
신문이 지적한 대로 The Times와 QS사에서 매년 발표하는 대학 순위는 가끔 일반적인 평판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매년 순위가 크게 뒤바뀌는 학교들도 많아 100% 신뢰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우리 언론에서 매년 열심히 보도하는 중국교통대학 발표 순위는 더 엉터리다.) 평가기관이 몇 가지 항목을 계량화(計量化)한 것에 대해 자의적으로 가중치를 둔 후 단순 계산해 내기에 엉뚱한 결과가 섞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신문 기사에서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멋진 표현대로 "계량화되는 것이라고 다 중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중요한 것들이 계량화되는 것은 아닌데도(Not everything that can be counted counts, and not everything that counts can be counted)" 우리는 평가결과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이 평가결과보다 더 문제시해야 할 것은 외부에서 이를 비판의 잣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평가 결과를 가지고 약점이 무엇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말지 판단해야 할 몫은 해당 기관이나 학교에 있지 언론이나 일반인 등 제3자가 가지는 게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100위권에 간신히 들었던 몇 년 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서울대가 이 모양이냐며 일반 여론이 상당히 안 좋았다. 평가항목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면 서울대가 평가에서 단기간에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 상당히 힘든 구조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는데도 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순위를 올리려면 외국인 교수, 외국인 학생수의 비율을 높여야 하고, 많은 졸업생들이 국내기업보다는 가급적 외국 유수의 기업에 입사하여 좋은 평판도 쌓아야 한다. 학생수 대비 교수 비율을 높이려면 학교에 대한 지원도 국민의 세금으로 보다 과감하게 해야 하고, 논문 인용실적을 높이려면 학문적 성과와 별 무관해 보이는 일부 예능계 학과는 폐지해야 하는데, 비판하는 자 누가 또 이것을 쉽게 동의하고 해결해 낼 수 있겠는가?
올해 QS평가에서 학문적 평판도가 33위인 서울대는 다른 항목에서 평가가 안 좋았음에도 전체 순위에서 50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듯하다. (평가항목 중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의 순위는 281위다. 이는 아시아권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자들이 올해 평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작년 47위에서 세계단 하락한 것이리라.
어쨌든 만 7천여개나 된다고 하는 전 세계 대학 중 500위 안에만 들어도 상위 3% 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서울대를 비롯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들이 그리 나쁜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닌데 그 평가와 무관한 사람들이 여론 재판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참 문제다. 그런 분들에게 조용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대체 전 세계 몇 위권이시길래?"
그 중 하나가 대학별 순위 매기기다. 전세계 대학을 대여섯가지 항목에 가중치를 두어 평가하는 것에 허점(虛點)이 있음을 지난 주 뉴욕타임스가 기사화했고 우리 신문이 이를 인용해서 보도했다. (외국에서 보도하기 전에 우리 신문은 왜 이런 정도의 기사를 못 쓰나 모르겠다.)
New York Times(11월 14일자) Questionable Science Behind Academic Rankings
조선일보(11월 15일자) NYT, 세계 대학순위 평가, 너무 믿지 마라
신문이 지적한 대로 The Times와 QS사에서 매년 발표하는 대학 순위는 가끔 일반적인 평판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매년 순위가 크게 뒤바뀌는 학교들도 많아 100% 신뢰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우리 언론에서 매년 열심히 보도하는 중국교통대학 발표 순위는 더 엉터리다.) 평가기관이 몇 가지 항목을 계량화(計量化)한 것에 대해 자의적으로 가중치를 둔 후 단순 계산해 내기에 엉뚱한 결과가 섞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신문 기사에서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멋진 표현대로 "계량화되는 것이라고 다 중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중요한 것들이 계량화되는 것은 아닌데도(Not everything that can be counted counts, and not everything that counts can be counted)" 우리는 평가결과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이 평가결과보다 더 문제시해야 할 것은 외부에서 이를 비판의 잣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평가 결과를 가지고 약점이 무엇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말지 판단해야 할 몫은 해당 기관이나 학교에 있지 언론이나 일반인 등 제3자가 가지는 게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100위권에 간신히 들었던 몇 년 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서울대가 이 모양이냐며 일반 여론이 상당히 안 좋았다. 평가항목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면 서울대가 평가에서 단기간에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 상당히 힘든 구조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는데도 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순위를 올리려면 외국인 교수, 외국인 학생수의 비율을 높여야 하고, 많은 졸업생들이 국내기업보다는 가급적 외국 유수의 기업에 입사하여 좋은 평판도 쌓아야 한다. 학생수 대비 교수 비율을 높이려면 학교에 대한 지원도 국민의 세금으로 보다 과감하게 해야 하고, 논문 인용실적을 높이려면 학문적 성과와 별 무관해 보이는 일부 예능계 학과는 폐지해야 하는데, 비판하는 자 누가 또 이것을 쉽게 동의하고 해결해 낼 수 있겠는가?
올해 QS평가에서 학문적 평판도가 33위인 서울대는 다른 항목에서 평가가 안 좋았음에도 전체 순위에서 50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듯하다. (평가항목 중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의 순위는 281위다. 이는 아시아권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자들이 올해 평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작년 47위에서 세계단 하락한 것이리라.
어쨌든 만 7천여개나 된다고 하는 전 세계 대학 중 500위 안에만 들어도 상위 3% 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서울대를 비롯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들이 그리 나쁜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닌데 그 평가와 무관한 사람들이 여론 재판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참 문제다. 그런 분들에게 조용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대체 전 세계 몇 위권이시길래?"
Sunday, 7 November 2010
Gender arbitrage
최근 이코노미스트에 재밌는 기사가 실렸다.
Gender arbitrage in South Korea - Profiting from sexism
한국은 Gender Arbitrage에 가장 이상적인 환경을 갖춘 나라라는 것이다. Arbitrage란 시장간에 가격차이가 있을 때 물건값, 금값, 돈값(환율) 등등이 싼 시장에서 사서 비싼 시장에 내다팔아 거래차익을 얻는 일을 말하는 경제학 용어다.
이런 Arbitrage를 Gender에 붙인 것 자체가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참신하다.
이 기사의 요지는 한국사회의 고학력 유능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고 한국 기업의 성차별적인 고용관행 때문에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이 손쉽게 그 유능한 여성들을 고용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여성 관리자 비율이 10%씩 올라갈 때마다 기업의 수익률이 1%씩 증가한다고 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Jordan Siegel의 분석으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성차별적 고용관행을 통해서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상대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하는 얘기는 다소 단선적인 듯하다. 우리 기업문화에는 분명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에 덧붙여 우리 직장생활이 머리를 써서 효율적으로 일하기 보다는 밤낮으로 몸을 던져 장시간을 버텨내야 능력을 인정해 주는 노동집약적이고 거친 남성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상대적인 열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 여성들이 그런 환경을 선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을 시간과 몸으로 때우는 비능률적인 근무환경일수록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외국 회사들이 Gender Arbitrage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즉, 성차별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불리한, 쿨cool하지 않은 우리의 후진적인 기업문화가 여성들이 외국기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내모는 측면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우리의 선택과 우리 환경이 어떤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 If we don't, our rivals will.
Gender arbitrage in South Korea - Profiting from sexism
한국은 Gender Arbitrage에 가장 이상적인 환경을 갖춘 나라라는 것이다. Arbitrage란 시장간에 가격차이가 있을 때 물건값, 금값, 돈값(환율) 등등이 싼 시장에서 사서 비싼 시장에 내다팔아 거래차익을 얻는 일을 말하는 경제학 용어다.
이런 Arbitrage를 Gender에 붙인 것 자체가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참신하다.
이 기사의 요지는 한국사회의 고학력 유능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고 한국 기업의 성차별적인 고용관행 때문에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이 손쉽게 그 유능한 여성들을 고용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여성 관리자 비율이 10%씩 올라갈 때마다 기업의 수익률이 1%씩 증가한다고 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Jordan Siegel의 분석으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성차별적 고용관행을 통해서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상대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하는 얘기는 다소 단선적인 듯하다. 우리 기업문화에는 분명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에 덧붙여 우리 직장생활이 머리를 써서 효율적으로 일하기 보다는 밤낮으로 몸을 던져 장시간을 버텨내야 능력을 인정해 주는 노동집약적이고 거친 남성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상대적인 열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 여성들이 그런 환경을 선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을 시간과 몸으로 때우는 비능률적인 근무환경일수록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외국 회사들이 Gender Arbitrage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즉, 성차별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불리한, 쿨cool하지 않은 우리의 후진적인 기업문화가 여성들이 외국기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내모는 측면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우리의 선택과 우리 환경이 어떤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 If we don't, our rival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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