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9 June 2010

왜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 계속 실패하는가?

축구의 종가, 잉글랜드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8강에도 못 올라갔다. 1라운드에서 미국, 알제리와 비긴 후 슬로베니아에게 간신히 이겨 16강에 조2위로 진출했지만, 라이벌 독일한테 4:1 망신스러운 스코어로 져서 이번 월드컵을 마감했다.

선수 면면을 보면 화려한데 왜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 힘을 못 쓸까? 같은 고민을 Freakonomics의 공동 저자 스티븐 더브너(Stephen Dubner)가 'Why Does England Lose?'라는 글을 통해 남겼다.

그의 말대로 100가지 이상의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여러 원인 중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EPL)에 외국인 선수가 너무 많이 뛰기 때문에 EPL에서 밀려난 자국선수들이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경험하지 못 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는 사커노믹스(SOCCERNOMICS)란 책의 내용을 인용한 견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

다만,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나는 잉글랜드인들이 태생적으로 축구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잉글랜드가 13번의 월드컵 출전 중 잉글랜드에서 개최된 1966년 대회에서만 우승을 하였을 뿐, 그 이후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4위한 것이 그나마 가장 좋은 결과이며 나머지 대회에서는 매번 8위 안팎의 순위를 얻었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잉글랜드는 8강 전문팀이라는 얘기다.

(1966년 우승 당시에도 결승전에서 독일과 만나 연장전에서 얻은 잉글랜드 Geoff Hurst의 세번째 골이 논란이 많았는데, 이번 2010 남아공 대회의 독일전에서 잉글랜드 람파드(F. Lampard) 골이 인정되지 않은 것과 반대로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에 떨어진 Hurst의 애매한 슛이 골로 인정되었다. 결국 석연치 않은 이 판정 덕분에 주최국 잉글랜드가 4:2로 이겨 우승을 하였다.)

이러한 월드컵 성적은 그들의 축구 인프라와 축구에 대한 열정, 엄청난 숫자의 축구팀과 선수들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전국단위의 리그만 총 5개로 EPL로 명칭되는 1부리그부터 Conference National로 불리는 5부리그까지 총 116개 팀(club)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5부리그 밑으로도 각 지역별로 운영되는 6부에서 21부까지 수많은 리그들이 있는데 잉글랜드에만 140개 이상의 리그와 7천개 이상의 팀(Club)이 운영된다고 하니 축구 시스템 전체규모는 얼른 상상해 내기 쉽지 않다.

더욱 대단한 것은 각 지역과 학교별로 어린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각종 축구클럽에 속해 공을 찬다는 사실이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우리 아들녀석조차도 영국에 있을 때 매주 토요일 마다 1.5파운드씩 내고 축구클럽에 참가하곤 했다.) 나라 전체가 축구클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축구에 대해서 만큼은 광적이다.

각국의 리그 시스템을 보면 잉글랜드처럼 여러 단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없다. 월드컵 단골 우승국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도 잉글랜드보다 리그 시스템이 단순하며 클럽숫자도 훨씬 적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3부 3개리그 48개 팀으로 단촐하게 운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도 역대 월드컵 참가 최고 성적이 4위이고 남아공대회에서 16강까지 올랐으니 잉글랜드와 별반 수준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축구종가'가 최근 10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자국 출신 득점왕을 한차례도 배출하지 못 하였으며, 최근 5년간 매 시즌별 득점순위 5위 이내 선수 중 잉글랜드 출신 선수는 람파드, 제랄드(S.Gerrard), 루니(W. Rooney), 벤트(D. Bent) 4명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면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 자국인 감독은 7명에 불과하고 월드컵 대표팀 감독도 2002년, 2006년 스웨덴인(Sven-Göran Eriksson)에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인(Fabio Capella)이 맡았다. 이 지경이니 잉글랜드는 넘쳐나는 축구인들 속에서도 이래저래 늘 인물난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의 나라 축구팀을 이 정도로 생각해 주는 건 거의 '기우' 수준으로 쓸데 없는 짓이긴 하다) English들은 축구를 좋아하기만 했지 축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젬병'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온 국민이 어릴 때부터 수십만 개의 클럽에서 죽어라고 축구해서 겨우 건져낸 선수가 루니, 람파드이고 왕년의 베컴(D.Beckham), 쉬어러(A. Shearer) 정도다.

더브너(S. Dubner)의 글에 있는 주장처럼 프리미어리그에 외국인선수가 많이 뛰어 자국선수들이 밀려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7000여개 클럽에서 뛰는 수많은 잉글랜드인들 중에서 프리미어리그 수준을 뒷받침할 자국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잉글랜드의 우수한 선수들이 더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밀려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국가대표팀원 중 일부는 (수준이 잉글랜드보다 떨어지는) 다른 나라 리그의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도 있을 법한데 현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원은 100% 자국의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다. 즉,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너무 많이 뽑아 밀려난 선수는 없으며 대표로 뽑을 만한 선수는 그 선수들이 전부라는 얘기가 아닌가?

(최근 잉글랜드 선수로 타국 리그에서 뛴 적이 있는 선수는 전 국가대표인 데이빗 베컴(레알 마드리드, LA갤럭시), 마이클 오웬(M. Owen 레알 마드리드), 오웬 하그리브스(O. Hargreaves 바이에른 뮌헨) 정도다.)

내 주장이 조금이라도 그럴 듯한 것이라면 잉글랜드가 주로 월드컵 8강에 머문(오른) 것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은 대단한 성과였던 셈이다.


* 참고로, EPL의 최근 10년시즌동안 득점왕은 00/01 Jimmy Floyd Hasselbaink, 01/02, 03/04, 04/05, 05/06 Thierry Henry 06/07, 09/10 Didier Drogba, 07/08 Christiano Ronaldo, 08/09 Nicolas Anelka

Monday, 28 June 2010

Pat Metheny - Orchestrion



지난 6월 초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을 열였던 팻 메스니(Pat Metheny)의 Orchestrion 소개 영상이다.  동영상 첫부분부터 나오는 곡이 금년 1월에 발매된 앨범 Orchestrion의 첫번째 곡 'Orchestrion'이다.

오케스트리온(Orchestrion)이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시도되었던 오케스트라와 같은 집단 연주를 자동적으로 재현하는 기계적 장치를 일컫는데 팻 메스니에 의해서 이번에 더욱 정교하게 구현되었다고 한다. Improvisation을 중요한 요소로 삼는 재즈음악이 기계장치와 더 친숙하다니 의외다.

2002년 9월에 그의 내한공연을 가 봤지만, 금년 공연은 놓치게 되어 앨범 구입과 그 CD음악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2002년 같은 무대에서 팻 메스니 외에 6명이 들려주었던 꽉 찬 사운드를 이번엔 기계장치가 대신하였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앨범에 Associate Producer로 참여한 Steve Rodby가 바로 그 당시 Pat Metheny Group의 Bassist였던 그 사람일 것이다.

아무튼, 21년 전 Offramp(1982)라는 앨범에 실린 'Are you going with me'라는 곡을 처음 듣고 충격을 받은 이후 그의 음악을 쫓아다니며 들어보지만 그의 음악적 시도는 언제나 새롭고 그 성과도 매번 훌륭하다.  팻 메스니는 우리에게 '이런 게 바로 혁신이야' 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Sunday, 27 June 2010

아쉽지만 월드컵 끝!

약 보름간을 들뜨게 했던 우리들의 월드컵이 끝났다.
잘 했다. 세계 16강이 아무나 하는 일인가?
반에서 16등, 전교에서 16등도 어려운 일인데 우리팀이 세계 16등 안에 들었다.

월드컵 기간 이외에는 아무런 성원이나 관심도 없었지만 우리 대표팀은 나름대로 준비를 잘 했고 선전했다.

월드컵 기간이 되면 그동안 눈에 안 보이던 축구 전문가와 광팬들이 갑자기 늘어난다.
한 게임이라도 지면 수비가 무너졌느니, 4-2-3-1 포메이션이 잘 못 됐다느니 뭐 그리 아는 것도 많고 그리 불만들도 많은지...

할 얘기가 없으면 등장하는 문구가 '수비가 무너져', 아니면 '수비수 아무개가 누구를 놓쳐 골을 내줬다'는 둥 상대의 개인능력이나 팀의 공격수준은 고려없이 우리팀 수비능력에 대한 힐책성 얘기다.

골 먹는다고 무조건 수비력이 약하다는 평가는 불합리하다. 어떤 강팀이라도 골을 먹는 순간 만큼은 수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골은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승패가 갈리는 게 스포츠 아니던가? 공격이란 게 다름 아닌 수비를 무너뜨린 후 골을 넣는 것이므로 수비가 강한 팀이더라도 공격이 더 강하면 수비는 무너진다. 우리는 참 단순하게도 수비가 무너졌다는 얘기, 수비수가 공격수를 놓쳤다는 얘기는 꼭 지는 경기에서만 강조한다.

4-4-2 같은 포메이션도 경기 매 순간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을 대비하는 기본적인 틀일 뿐, 그 틀을 모든 상황에 맞춰 완벽하게 유지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특정 포메이션이 다른 포메이션보다 강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팀플레이의 바탕에 불과한 것을 만고불변의 원리처럼 떠드는 어중이 전문가들은 축구를 몸소 한 경기라도 해 본 사람인지 의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전문가인 양 떠들어대는 주장들을 뒤집어 보면 그것들은 아주 단순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뭐 대단한 전문가인 양 호들갑 떠는 사람들 중에 평소 클럽 연간 회원권이라도 구입해서 소리없이 경기장에 가서 응원이라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또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 버티다가 다음 월드컵 기간이 돌아왔을 때 이런 가짜 전문가들과 입만 살아있는 광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우리 축구팀이 그래서 불쌍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이들도 우리 국민인 것을.

Wednesday, 23 June 2010

클러치 플레이어와 진단편향

클러치 플레이어(Clutch Player)란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를 말한다.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나 왕년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내가 좋아하는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 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클러치 플레이어다.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미 프로농구(NBA)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클러치 플레이어가 다른 선수들보다 과연 성과가 좋은지 확인하는 연구를 했다고 한다.

박빙의 승부을 벌인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덜한 전반 종료 직전 5분간 상황과 경기종료 직전 5분간의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평범한 선수들이 두 상황간에서 득점수에 거의 차이가 없었던데 비해 클러치 플레이어들은 경기 막판 5분간의 득점이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역시 클러치 플레이어가 다르군'하는 일반적인 예상이 진실의 끝일까?

댄 애리얼리는 NBA의 클러치 플레이어가 경기 막판 5분간의 득점력이 더 좋아지는 것을 보고, 그들의 우수한 능력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슛 성공확률이 좋아졌거나 성공확률 보다는 슛팅 시도횟수가 증가했거나...두 개의 가능성 중 하나의 결과로 인해 득점이 많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가지 가능성을 놓고 분석한 결과 이 연구자는 클러치 플레이어들이 경기 막바지에 득점력이 좋아진 것은 단지 슛팅 시도횟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이 블로그의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금융전문가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두뇌활동을 통한 인지능력보다 (단순 기계조작능력과 같이) 육체적인 활동이 많은 고연봉의 농구선수들조차 중요한 순간에 슛팅을 많이 시도해서 성과가 좋은 것일 뿐이지 특별히 남들보다 우수한 기술로 인해 득점력(성과)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농구선수들도 이 정도일진대, 두뇌활동이 많은 금융전문가들도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우수한 능력과 성과를 발휘할 가능성은 더욱 더 낮다는 것이다.

(육체활동인 단순 기계조작능력 테스트에서는 보너스가 클수록 성적이 좋아진 반면, 인지능력 테스트와 같이 정신적인 활동이 필요한 경우는 보너스를 많이 줄수록 더 나쁜 성적을 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즉,성과에 따라 엄청난 보너스를 받는 금융기관 전문가들은 클러치 플레이어로 불리우는 우수한 운동선수들보다 훨씬 그 숫자가 많다는 사실까지 주목한다면, 그들에게 특별히 높은 연봉이나 보너스를 지급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연구결과는 '스웨이(Sway, Ori & Rom Brafman 저)'란 책에 소개된 경제학자 Barry Staw와 Ha Hoang의 논문 내용인 농구선수에 대한 진단편향(Diagnosis Bias) 문제와 어느 정도 상통한다.

스토와 호앙은 NBA선수의 출전시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득점력(scoring), 강인함(toughness)이나 순발력(quickness)과 같은 선수의 능력이나 성적이 아니고 드래프트 지명 순서(draft order)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들은 '드래프트 순서가 하나씩 뒤쳐질 때마다 출전시간은 최대 23분씩 감소'하며 1차 드래프트 선발선수는 2차 선발선수에 비해 평균 3.3년 정도 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최초 가졌던 의견에 근거해서 사람, 아이디어, 사물 등에 대해 일정한 인식표(label)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진단편향(diagonis bias)이라고 한다.

요약해서 이들 두 연구결과를 연결하면, 유명한 선수들은 일단 1차 드래프트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출전시간이 늘어나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보다 슛 시도횟수가 많아지며 그래서 득점이 많아지는 것인데도 이것을 그들의 능력에 따른 당연한 성과로 인식하여 그들에게 높은 연봉이 지급된다고 하는 일련의 개연성이 도출될 수 있다.

일단은 1차 드래프트에 뽑혀야, 일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름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번지르르한 직업을 가져야, 일단은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잘 생기고 봐야...하는 우리 세태가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보너스의 함정: 성과급이 과연 성과를 향상시키는가?

Dan Ariely: Irrational Economics from PopTech on Vimeo.




'상식 밖의 경제학 (Predictably Irrational)'의 저자이자 행태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최신작 'The Upside of Irrationality'가 2010년에 출판되었다. 아마도 곧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이 소개될 것 같다. (지금쯤 누군가 열심히 번역하고 있을 것이다.)

우연히 그의 글과 블로그의 동영상을 통해 그 내용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서조차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의 CEO들이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는데 그것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에서 그의 연구가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그의 관심은 '보너스가 성과를 올리는데 그만한 효과가 있는가?'이다.

댄 애리얼리는 인도(India)에서 수행한 실험에서 하루치 급료만큼의 보너스(낮은 보너스)를 받는 그룹, 2주일치 급료에 해당하는 보너스(중간 보너스)를 받는 그룹, 5개월치 급료를 보너스(엄청난 보너스)로 받는 그룹으로 나누어, 퍼즐 끼워맞추기, 숫자 맞추기와 같은 놀이를 진행하면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경우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중간 보너스' 그룹의 성적은 '낮은 보너스' 그룹의 성적과 비슷하게 나왔으며, 더욱 의외였던 것은 '엄청난 보너스' 그룹의 성적은 나머지 두 그룹보다도 오히려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왔다는 점이다.




MIT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숫자를 더하기와 같은 인지능력(congnitive skill) 테스트와 키보드 빨리 누르기와 같은 단순 기계조작능력(mechanical skill) 테스트를 각각 성과가 좋을 경우 보너스를 많이 받는 그룹과 보너스를 조금 받는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더니, 단순 기계조작능력 테스트에서는 보너스가 클수록 성적이 좋아진 반면, 인지능력 테스트와 같이 정신적인 활동이 필요한 경우는 인도에서의 실험과 같이 보너스를 많이 줄수록 더 나쁜 성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즉 그의 실험의 결과는 인센티브가 일정 수준이상 증가하면 위 그래프의 빨간 색 곡선과 같이 성과는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실험에서, 철자바꾸기 게임을 조용한 독방에서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행하게 했을 때 피실험자들의 성적은 오히려 더 나빴다고 하는데
댄 애리얼리의 결론은 타인의 평가도 보너스와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에 단순 반복업무에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어느 한계점을 지나면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스트레스가 의욕이나 동기유발효과를 압도하여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특정 직원들에 대해 많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회장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음을 댄 애리얼리의 연구는 확인해 주고 있다.

또한,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 교수의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보상을 얻거나 감시와 평가를 받을 경우 통제받고 있음을 느끼게 되므로 자율적, 내재적 동기가 떨어지게 된다는 견해와도 일치한다. 보상이 사라지면 보상에 따르는 효과도 즉시 사라지게 되므로 지속적인 성과도출을 위해서는 보상이나 감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급료에 대한 6가지 위험한 신화(Six dangerous myths about pay)'라는 글을 통해서 개인적인 인센티브 지급은 팀워크를 해치고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하게 해 성과급이 성과를 향상시킨다는 믿음은 잘 못된 것이라는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의 지적,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태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교수의 견해도 다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는 심지어 CEO의 성과급이나 보너스, 연봉조차도 고어텍스로 유명한 W.L.고어(Gore)사의 사례처럼 동료들의 평가나 회의를 통해 결정해서 지나친 성과급에 따른 폐해를 줄여 나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바른 선택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관련 글: What’s the Value of a Big Bonus?

혼창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이 글의 제목은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금년 2월 발간한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의 편집장 이지훈 기자가 쓴 책의 제목이다.

제목과 링크되어 있는 기사가 이 책의 출발점이 된 듯하다.

내가 위클리비즈의 열혈 독자인 탓에 대부분의 내용이 익숙한 것들이라 책은 쉽게 읽혔지만,

아쉬운 것은 대부분 위클리비즈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근거한 내용들이어서인지 깊이를 크게 느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책 말미에 실린 참고문헌의 내용도 정교하거나 풍부하지 않아서 (이게 우리나라 도서들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다) 아쉬웠다.

일류기업 경영자와 세계 경영학계의 구루(Guru)들의 명언들을
'혼/창/통'의 세 키워드에 따라 잘 분류해서 담아 놓아 핵심정리 요약집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평소 이 분야의 지식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들한테는 매우 유용할 것 같다.

다만, 조선일보 소속기자들이 쓴 위클리비즈의 기사가 주요 참고문헌이 되고, 조선일보 기자인 저자만의 고유한 논리, 주장이 크게 추가된 것이 없는 이상, 이 책은 신문사의 이름(예를들어, 조선일보 위클리비즈팀)으로 출판되는 것이 맞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위클리비즈팀의 이름으로 위클리비즈의 기사들을 죽 묶어 낸 책도 따로 나왔었구나. 그래도 '혼창통'이라는 책 표지에 '이지훈 지음'이라는 표현은 영 어색하다. '엮음' 정도가 맞지 않을까?)

Tuesday, 22 June 2010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 『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 이 시는 작년 9월 광화문 교보빌딩 벽 글판에 붙은 글이라고 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1212010322371910020

Saturday, 19 June 2010

즐거운 놀이: 월드컵 축구 스코어 맞히기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작성된 네이버 지식인의 답변글이 우리나라 팀의 월드컵 스코어를 기가 막히게 예언했다고들 난리다.

이 답변을 쓴 사람은 첫 경기 그리스전 스코어 2:0에 이어, 아르헨티나 전 1:4 패배까지 정확하게 맞혔다.

아래의 글이 바로 화제의 예언 글

* 한국 16강 현실적으로 가능성


그렇다면, 이 예언자(?)의 세번째 예언인 나이지리아전 2:1 승리 전망까지 들어 맞을까?

우리나라 사람 5천만명 중 축구에 관심있는 천만명이 축구 스코어를 예상했다고 하자.

이 사람들 중 두 경기를 연속해서 맞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먼저, 그리스 전에 대해서는
그리스 전 2:0 승리를 약 23.9%의 사람이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전 1:4 패배는 그 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예상했다. 스포츠토토에서는 약 0.33% 정도(29만 여명 중 967명)만이 1:4 스코어를 예상했단다. (연합인포맥스에서 실시한 901명의 조사에서는 아무도 못 맞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천만명 중 두 경기를 모두 정확하게 예상한 사람은 약 8000명(정확히는 7917명)이라는 얘기다. (1000만*23.9%*0.33%)

즉,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 중에는 두 경기를 정확하게 맞힌 사람이 의외로 그 숫자가 꽤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네이버의 예언자의 말대로 나이지리아 전 2:1 승리를 그리스전에서 2:1스코어를 예상한 사람 비율을 적용하여 43.5%의 사람들이 예상한다고 하면, 세경기를 모두 정확하게 맞힐 사람은 천만명 중 약 3400명이나 된다.

그러니까, 나머지 999만 여명의 사람들에게는 이들 3400명이 거의 신통한 점쟁이 정도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는데, 이 예상치가 정확한 실력을 근거로 판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객관적인 실력만 가지고 판단하면 4:1 아르헨티나 승리 예상자 수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우세한데도 우리는 '한국이 승리해야 한다' 라는 희망을 자신의 전망치에 더해 예측을 하게 된다. (위의 사이트를 보면 전체 3분의 2가 한국 승리 또는 무승부를 예상했다.)

또한, 우리가 스코어를 예상할 때 설문조사의 경우처럼 집중화/관대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즉, 3:0 과 같이 보다 극단적인 스코어 보다는 2:1과 같이 양팀에 적당하게 골을 나눠 놓은 스코어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능히 예상이 가능하다.

거기에, 평소에 축구에 대해 관심도 없고 우리나라 축구팀은 물론 아르헨티나나 그리스 실력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들 조차 월드컵 시즌만 되면 내기에 동참한다는 사실이 확률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여기에 덧붙여 남들이 이렇게 부정확한 기준에 따라 예상했는데도 그걸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오류를 증폭시킨다.

* 관련 기사: 스포츠 정신분석학으로 본 내기 심리… 무조건 한국이 이긴다고 거는 당신은?(조선일보, 2010.6.18)


실제 내기를 거는 상황이 되면, 위에 소개된 기사 내용처럼 '현실형' 인간들보다 '의존형' '자기도취형'이 많을 것이므로 더더욱 예측이 들어맞을 확률은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저 위에 링크한 사이트들에 나온 실제 예상치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오류나 거품을 걷어내면 1000만명 중 두경기 스코어를 모두 맞힐 사람은 훨씬 늘어날테지만, 현실에서는 두 경기 스코어를 모두 맞히는 사람이 '소름 돋는 예언자', '신', '시간여행자'로 불리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예언자의 말처럼 우리나라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2:1 정도로 이겨서 16강에 올라가 줬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우리나라가 지면 무조건 탈락하게 되어 스코어 예상하기라는 즐거운 놀이도 끝나게 되니까...


* [읽어볼만 한 글] 핵폭탄 연구하던 수학자들 축구를 분석하다

Saturday, 5 June 2010

집시의 기도

집시의 기도

-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 돼"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Friday, 4 June 2010

퍼펙트게임 오심 - 스포츠가 주는 교훈

6월 2일 미국 프로야구(MLB) 경기에서 정말 재미난 사건이 있었다.
재미있었다기 보다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어처구니 없거나.... 광분할 만한 사건이라고 해야 맞겠다.

홈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아만도 갈라라가(Armando Galarraga)라는 투수가 9회초 마지막 수비 2아웃인 상황까지 26타자를 퍼펙트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 때까지 안타나 볼넷 등을 허용하지않아 아무도 1루에 출루한 사람이 없었다는 뜻)

그런데, 투아웃 1-1상황에서 상대팀의 27번째 마지막 타자 제이슨 도날드(Jason Donald, 추신수가 속해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신인 유격수)가 친 내야땅볼을 수비하는 과정에서 1루심(짐 조이스 Jim Joyce)은 1루수가 1루를 커버하러 들어간 투수에게 던진 공을 타자주자 세이프로 선언하여 메이저리그 역사상 21번째 퍼펙트게임을 바로 눈 앞에서 날려 버렸다.

그런데, 그 판정을 비디오로 다시 돌려보니 완벽한 아웃이었다는 것에서 사건이 커진다.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었지만,
그 다음 날 경기에서 타이거스 감독은 경기전 선수명단을 제출하는 일을 갈라라가에게 맡겨 그 전날 오심을 내린 심판 조이스와 만나게 한다. 사건 당사자인 둘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화해했다고 하는데....

장면을 보자.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 있지만,
미국 사람들이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데 얼마나 탁월한 감각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경기 후 나온 얘기들이다.

조이스 심판: 내 심판경력에서 가장 큰 판정실수. 내가 갈라라가의 퍼펙트게임을 빼앗고 말았다. 내 오심으로 퍼펙트게임을 놓친 갈라라가에게 미안하다.

갈라라가: 조이스가 나보다 더 괴로울 것. 인간은 완전하지 않으며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조이스도 그런 판정을 내리길 원하진 않았을 것.

백악관 대변인 로버트 깁스 Gibbs: 실수를 인정한 심판과 담대하게 반응한 투수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tremedously heartening). MLB가 갈라라가 선수에게 퍼펙트게임을 이룬 것으로 인정해 주길 바란다.

MLB 커미셔너 버드 셀리그 Bud Selig: Human element인 오심도 야구의 일부. 문제가 된 판정을 번복하지 않겠다. 대신 앞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을 확대하는 문제와 심판체계를 재검토하겠다.


퍼펙트게임, 9회 투아웃 마지막타자, 오심, 사과, 용서, 화해, 백악관의 개입과 원칙 고수....등등 이번 사건은 일부러 만들어 낸 이야기처럼 매력적인 요소들로 넘친다.

갈라라가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 후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감동을 주는 드라마로 끝날 수도 있고 실수보다 더 비참한 패배로 마무리될 수가 있다.

스포츠는 정직해서 이렇게 감동과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