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종가, 잉글랜드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8강에도 못 올라갔다. 1라운드에서 미국, 알제리와 비긴 후 슬로베니아에게 간신히 이겨 16강에 조2위로 진출했지만, 라이벌 독일한테 4:1 망신스러운 스코어로 져서 이번 월드컵을 마감했다.
선수 면면을 보면 화려한데 왜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 힘을 못 쓸까? 같은 고민을 Freakonomics의 공동 저자 스티븐 더브너(Stephen Dubner)가 'Why Does England Lose?'라는 글을 통해 남겼다.
그의 말대로 100가지 이상의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여러 원인 중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EPL)에 외국인 선수가 너무 많이 뛰기 때문에 EPL에서 밀려난 자국선수들이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경험하지 못 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는 사커노믹스(SOCCERNOMICS)란 책의 내용을 인용한 견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
다만,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나는 잉글랜드인들이 태생적으로 축구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잉글랜드가 13번의 월드컵 출전 중 잉글랜드에서 개최된 1966년 대회에서만 우승을 하였을 뿐, 그 이후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4위한 것이 그나마 가장 좋은 결과이며 나머지 대회에서는 매번 8위 안팎의 순위를 얻었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잉글랜드는 8강 전문팀이라는 얘기다.
(1966년 우승 당시에도 결승전에서 독일과 만나 연장전에서 얻은 잉글랜드 Geoff Hurst의 세번째 골이 논란이 많았는데, 이번 2010 남아공 대회의 독일전에서 잉글랜드 람파드(F. Lampard) 골이 인정되지 않은 것과 반대로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에 떨어진 Hurst의 애매한 슛이 골로 인정되었다. 결국 석연치 않은 이 판정 덕분에 주최국 잉글랜드가 4:2로 이겨 우승을 하였다.)
이러한 월드컵 성적은 그들의 축구 인프라와 축구에 대한 열정, 엄청난 숫자의 축구팀과 선수들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전국단위의 리그만 총 5개로 EPL로 명칭되는 1부리그부터 Conference National로 불리는 5부리그까지 총 116개 팀(club)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5부리그 밑으로도 각 지역별로 운영되는 6부에서 21부까지 수많은 리그들이 있는데 잉글랜드에만 140개 이상의 리그와 7천개 이상의 팀(Club)이 운영된다고 하니 축구 시스템 전체규모는 얼른 상상해 내기 쉽지 않다.
더욱 대단한 것은 각 지역과 학교별로 어린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각종 축구클럽에 속해 공을 찬다는 사실이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우리 아들녀석조차도 영국에 있을 때 매주 토요일 마다 1.5파운드씩 내고 축구클럽에 참가하곤 했다.) 나라 전체가 축구클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축구에 대해서 만큼은 광적이다.
각국의 리그 시스템을 보면 잉글랜드처럼 여러 단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없다. 월드컵 단골 우승국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도 잉글랜드보다 리그 시스템이 단순하며 클럽숫자도 훨씬 적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3부 3개리그 48개 팀으로 단촐하게 운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도 역대 월드컵 참가 최고 성적이 4위이고 남아공대회에서 16강까지 올랐으니 잉글랜드와 별반 수준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축구종가'가 최근 10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자국 출신 득점왕을 한차례도 배출하지 못 하였으며, 최근 5년간 매 시즌별 득점순위 5위 이내 선수 중 잉글랜드 출신 선수는 람파드, 제랄드(S.Gerrard), 루니(W. Rooney), 벤트(D. Bent) 4명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면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 자국인 감독은 7명에 불과하고 월드컵 대표팀 감독도 2002년, 2006년 스웨덴인(Sven-Göran Eriksson)에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인(Fabio Capella)이 맡았다. 이 지경이니 잉글랜드는 넘쳐나는 축구인들 속에서도 이래저래 늘 인물난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의 나라 축구팀을 이 정도로 생각해 주는 건 거의 '기우' 수준으로 쓸데 없는 짓이긴 하다) English들은 축구를 좋아하기만 했지 축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젬병'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온 국민이 어릴 때부터 수십만 개의 클럽에서 죽어라고 축구해서 겨우 건져낸 선수가 루니, 람파드이고 왕년의 베컴(D.Beckham), 쉬어러(A. Shearer) 정도다.
더브너(S. Dubner)의 글에 있는 주장처럼 프리미어리그에 외국인선수가 많이 뛰어 자국선수들이 밀려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7000여개 클럽에서 뛰는 수많은 잉글랜드인들 중에서 프리미어리그 수준을 뒷받침할 자국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잉글랜드의 우수한 선수들이 더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밀려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국가대표팀원 중 일부는 (수준이 잉글랜드보다 떨어지는) 다른 나라 리그의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도 있을 법한데 현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원은 100% 자국의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다. 즉,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너무 많이 뽑아 밀려난 선수는 없으며 대표로 뽑을 만한 선수는 그 선수들이 전부라는 얘기가 아닌가?
(최근 잉글랜드 선수로 타국 리그에서 뛴 적이 있는 선수는 전 국가대표인 데이빗 베컴(레알 마드리드, LA갤럭시), 마이클 오웬(M. Owen 레알 마드리드), 오웬 하그리브스(O. Hargreaves 바이에른 뮌헨) 정도다.)
내 주장이 조금이라도 그럴 듯한 것이라면 잉글랜드가 주로 월드컵 8강에 머문(오른) 것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은 대단한 성과였던 셈이다.
* 참고로, EPL의 최근 10년시즌동안 득점왕은 00/01 Jimmy Floyd Hasselbaink, 01/02, 03/04, 04/05, 05/06 Thierry Henry 06/07, 09/10 Didier Drogba, 07/08 Christiano Ronaldo, 08/09 Nicolas Anel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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